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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박원순 시장의 수준급 진행실력 아쉬운 경어사용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식이 화제였습니다. 시장이 직접 MC가 되어 진행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는데요.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 입장이다 보니 어느덧 내용보다 그의 진행솜씨에 눈길이 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MC로서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치밀한 사전 준비와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전략적인 서술어 사용  


"안녕하세요. 박원순입니다."

 
주의 깊게 박원순 시장(이하 박 시장)의 말을 들어보면, 서술어가 '-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로도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언어습관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전략적인 언어사용인데요. 서술어가 '-다' 끝나는 말은 보통  공식적 자리에서 객관적인 느낌을 줄 때 쓰지요. 보통 뉴스나 공식행사, 면접장에서 쓰이는 어미처리입니다.  '-요'는 어떤가요? 친구들끼리, 가정에서 쓰는 말입니다. 비공식적이면서 친근한 느낌을 주지요. 이를 섞어 씀으로 해서 다수의 시청자를 상대하면서 예의를 차린다는 느낌도 주고 반대로 한사람 한사람을 상대한다는 친근함도 보여준 것입니다. 딱딱한 취임식에 '-요'라는 말이 들어가며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 것이죠. 혹 면접이나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벤치마킹해 볼 만한 장치였습니다.

의외로 속도감있네  

박 시장의 후보시절 토론회를 보면서 나경원 후보에 비해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거 국면이 박원순 후보 검증국면으로 흘렀고 상대가 여러 차례 생방 토론으로 달련된 후보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박 후보가 불리했습니다. 거기에 박 시장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취임식은 진행이 스피드했습니다. 말 속도가 바뀐 것도 아니었는데요. 비밀은 철저한 단문 사용에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보시면 여기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곳입니다."
"여기 보시면 원순씨에게 바라는 벽보판입니다. 너무 화려하죠?"

말을 글로 옮겼지만 어떤가요?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박원순 MC에게 배우는 스피치 전략 두번째, 짧은 단문 위주로  말하라 입니다.

지루할 틈이 없네  


제 아무리 유재석이라 해도 혼자나와 1분 동안 이야기 한다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유재석이다하고 신기해서 관심을 끌 순 있지만 30초 이내에 뭔가 없으면 바로 채널은 돌아갑니다. 변덕스러운 시청자의 눈을 잡아 놓기 위해 TV 프로그램에서는 수많은 장치들이 있는거죠. 승승장구처럼 게스트를 초대한다던지, 무한도전처럼 미션을 준다던지, 1박 2일 처럼 복불복 게임을 한다던지, 놀러와처럼 소품을 쓰는 것이지요.


박원순 시장의 취임식 어땠을까요?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 장소의 이동(비서설-> 집무실-> 침실->집무실), 소품의 활용(포스트잇 벽보, 시장 사진, 기울어진 책장), 게스트의 등장(서울시의장단, 서울시 간부진), 예능에서 흔히 하는 독점 공개(침실 공개)까지...... 지루할 틈이 없지요. 한 마디로 철저하게 준비된 박원순 MC였습니다.

아쉬운 경어 사용  

우리 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경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서술어에 '-시-'만 붙이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려사항이 꽤 많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진행 멘트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000 의장님 나오셨습니다."
"국민의례는 행정부시장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이 말들이 어색하게 들리는 것은 경어의 '남용'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경어란 듣는 시청자 중심으로 해야합니다. 공식 석상에선 청중이겠지요. 설사 대통령 취임식이라고 해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식장에 입장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국가원수라 해도 듣는 국민이 우선이기에 대통령을 마냥 높일 수 없는 것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좋지요. 물론 당시 취임식 장내 진행자는 지나친 경어사용을 하긴 했지만요 ㅠㅠ 

물론 현실적으로 공식 석상이나 방송에서도 사회 직위가 높거나 나이가 든 분들을 낮춘다는 것은 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답은 있겠지요^^ 흔히 쓰는 경어는 선어말어미' -시- ', 조사 '께서, 께' 접미사 '-님' 입니다. 이 세 가지 중 듣는 이가 느끼는 경어의 강도는 시<께서, 께<님의 순으로 커집니다. 보통 '님'만 빼도 경어의 강도가 약해집니다.

"000의장님 나오셨습니다. "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요?

① 000의장 나오셨습니다.
② 000의장께서 나오셨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이 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경어 사용에 있어서도 '시민'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님'을 빼고 진행을 했더라면 MC 박원순으로서 좀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