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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공대생이 되고나서 후회했던 순간들



고백하건데 내가 공대생이 됐던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때문이었다. 어릴 적 TV에서 봤던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은  깔끔했고, 형형색색의 화학성분들이 가득한 플라스크로 가득한 실험실에서 폼나게 현미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며 그들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 탄생을 기다리는 장인이었고 연금술사였다. 거기다가 아인슈타인의 파마하고 드라이 안한 듯한 머리는 나에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이과가야 취직하기도 쉽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 몫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공대생이 되고나서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대=∑(남자+남자)×남자  


남중, 남고를 졸업하며 대학에 들어간 순간 사내녀석들의 그 쾨쾨 묵은 냄새와 작별하는 줄 알았다. 중학교 때 봤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처럼 남녀 학생들이 섞여 술도 마시고 MT가서 게임도 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 그런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첫 수업시간 교실의 냄새는 익숙한 남자들의 그것이었다. 나는 좌절했다. 도대체 누가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고 했던가. 얼마전까지 초등학생 사이에서 여학생이 부족해 남자들끼리 짝궁하는 애들도 있다는 신문기사도 났지만 그 애들의 비극은 미안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공대를 간다면 말이다.

공대 아름이는 어디에???  


공대에도 여성은 있다. 문제는 100명 중의 10명(10:1)이라는 비대칭적인 비율이다. 여기에 예쁜 후배들을 기다렸을 선배들의 숫자만 산술적으로 합쳐도 경쟁률은 2배로 높아진다. 거기에 공대 아름이(얼짱)이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녀에겐 늘 밥을 사줄 오빠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잘 나간다는 복학생 형님들과 같은 줄에 앉아 늘 수업을 듣고 우리 같으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대학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게 된다. 나같은 아웃사이더들은 그녀들의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얼마전 아는 오빠만 400명이라는 여자 공대생이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다. 역으로 말하면 난 400명 중에 한 명인, 이름도 잘 기억 안나는 그저 아는 오빠였을 뿐이다. 그런데 날 알기나 했을까?

 진리란 단순하다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리포트는 A4 용지 한 장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리포트이다."

공대에서 요구하는 시험의 답안도 간단한 것이 미덕입니다. 군더더기 말 없이, 핵심 키워드와 적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C, java)또는 공식의 나열, 그리고 최종답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공계, 좁게는 수업시간에만 해당한다는 것을 교양수업시간에 알았습니다. 교양 수업에서 공대생들은 늘 문과생들의 베이스를 깔아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바로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는 능력이 학점을 잘 받는 다는 것을 경험해온 사람의 글쓰기가 인문학적 글쓰기 방식과 조금 달라서이지요. 좀 더 친절한 글쓰기 방식을 요구하는 인문학의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공대생의 글쓰기는 조금 거칠어 보였을 것입니다.


글쓰기라는 것은 말하기와 또 맞닿아 있지요. 사실 공대를 다니면서 발표 수업을 한 게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수학공식이 난무하고 그 풀이 과정만 몇 번 쓰다보면 교수님도 발표 시킬 시간이 없을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양 수업 시간에 발표라도 하면 덜컥 겁이나는 게 사실입니다.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해봤기 때문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사회에 나와서 보니 프리젠테이션과 또 그의 밑바탕이 되는 글쓰기 능력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선물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포장이 더 중요하다는 게 사회의 문법이더군요. 특히 직업이 아나운서니 말 다했지요. ㅠㅠ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곳에 존재해 왔지요." 
'아이폰'으로 대박을 터트린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대를 다니면서 가장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공에 대한 지식에 비해 인문학적 지식이 얕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2번씩 보는 '퀴즈'라는 비정기적인 시험, 수업 진도도 따라가기 버거웠던 학과 공부에 파묻혀 이론의 배경이 되는 철학적 세계관이나 그 이론이 태동하게 된 역사, 그 외 교양인으로서 감수성을 키우는 문학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적극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미국의 대학처럼 공대생도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듣게 하는 교육 시스템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블로그에 글 한편 쓰는 시간도 많이 줄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라 쓰고 나니 공대에 대한 불평만 하고 말았네요. 좋은 점도 많았는데 ㅎㅎ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무거워졌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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